본문 바로가기
view.log

질문이 허락된 자리 — 6월, 그림과 책이 묻는 것들

by faith.log 2026. 5. 31.

질문이 허락된 자리 — 6월, 그림과 책이 묻는 것들

5월이 물러가고 6월이 온다. 초여름의 빛은 아직 사나워지지 않았지만, 한낮의 길이가 길어졌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안다. 무언가를 오래 바라볼 수 있는 계절이 왔다. 그 빛 아래 이달에 모인 전시와 행사들은 묘하게도 같은 방향으로 손을 뻗는다.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죽음 앞에서, 혁명의 파편 앞에서, 빛과 어둠 사이에서, 그리고 책 한 권 앞에서 말이다. 대답을 내놓기보다 질문 자체를 더 선명하게 만드는 자리들이다.


1. 죽음을 직면하되 삼키지 못한 자리 —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6월 28일까지만 볼 수 있다. 놓치면 기다려야 한다. 허스트의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이고, 두 번 오지 않을 기회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1990년대부터 죽음을 예술의 재료로 삼아온 작가다.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에 잠긴 상어,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인간의 두개골, 수천 마리의 나비가 박힌 캔버스. 작품마다 흐르는 주제는 하나다. 인간은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가. 돈으로, 과학으로, 예술로 영생을 살 수 있는가. 이 전시의 제목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한다.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그의 작업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정확한 반응이다. 허스트의 세계는 화려하고 도발적이지만, 그 안을 오래 들여다보면 어딘가 공허하다.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그것을 끝내 삼키지 못하는 자리. 아름답게 포장된 불안이다. 그 공허함의 정체를 스스로 묻고 싶다면, 이번 달 안에 가야 한다.
 
< 공연 정보 >

  • 전시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 전시 기간: 2026년 3월 20일 ~ 2026년 6월 28일
  • 관람 시간: 화~일 10:00~18:00
  • 티켓 정보: 8,000원
  • 예매 정보: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2. 파리가 서울에 분관을 냈다퐁피두센터 한화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6월 4일, 여의도 63빌딩 별관이 퐁피두센터 한화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파리 퐁피두센터가 서울에 공식 분관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4년간 퐁피두의 소장품이 이 공간을 채운다. 파리 본관이 리노베이션으로 문을 닫은 지금, 역설적으로 서울에서 피카소와 브라크의 원작을 볼 수 있게 됐다.
 
개관전의 주제는 큐비즘이다.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페르낭 레제, 소니아·로베르 들로네 등 43명의 작가, 91점의 퐁피두 소장품이 1,000평 전시 공간을 채운다. 큐비즘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것이 아름다움을 파괴한다고 했다. 실제로 큐비즘은 하나의 시점을 고집하는 대신 동시에 여러 각도에서 사물을 보려 했다. 절대적 시점의 해체. 20세기 예술이 거기서 출발했다.
 
특별 섹션 'KOREA FOCUS'도 눈여겨볼 만하다. 김환기, 유영국, 박래현 등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 21점이 함께 걸린다. 서구의 아방가르드가 한국적 현실 속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다. 한 공간 안에서 피카소와 김환기를 나란히 마주치는 경험은 서울이 아니면 쉽지 않다.
 
< 공연 정보 >

  • 전시 장소: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1, 63빌딩 별관)
  • 전시 기간: 2026년 6월 4일 ~ 10월 4일
  • 관람 시간: 화~일 10:00~19:00
  • 티켓 정보: 28,000원
  • 예매 정보: 퐁피두센터 한화 공식 홈페이지
퐁피두센터 한화(2026년 6월 예정)서울 영등포구 63로 50

 


3. 빛은 어디서 오는가 —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

여의도 더현대 서울 ALT.1에서 7월 4일까지 열린다.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 미술관이 소장한 3만여 점 가운데 52점을 추려 서울에 처음 내보냈다.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렘브란트에서 시작해 고야로 끝나는 이 전시는 유럽 회화 300년의 흐름을 한 공간에서 걷는 경험이다.
 
렘브란트의 대표작 〈깃털 모자를 쓴 청년〉(1631)이 이 전시의 첫 번째 얼굴이다. 어둠 속에서 얼굴 하나가 떠오른다. 배경은 지워졌고 빛이 닿는 곳만 남아 있다. 렘브란트는 평생 이 방식으로 인간을 그렸다. 어디서 빛이 오는지 묻지 않아도 관객은 느낀다. 전시의 끝에는 고야가 서 있다. 스페인 궁정화가로 출발했지만 말년의 고야는 어둠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그가 판화 연작에 붙인 말이다. 빛에서 출발해 어둠으로 끝나는 이 전시의 동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질문이다.
 
트래블레이블의 공식 도슨트 투어가 함께 운영된다. 평일 3회, 주말 4회. 작품 하나하나를 안내받으며 걷는 1시간은 전시를 다른 깊이로 열어준다. 혼자 보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다.
 
< 전시 정보 >

  • 전시 장소: 더현대 서울 ALT.1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108, 6층)
  • 전시 기간: 2026년 3월 21일 ~ 7월 4일
  • 티켓 정보: 성인 23,000원 / 청소년, 어린이 18,000원
  • 도슨트 투어: 18,000원 / 평일 11:30·14:00·15:30 / 주말 11:30·14:00·15:30·17:00 (소요 약 1시간)
  • 예매 정보: 인터파크 NOL 티켓, 트래블레이블 공식 홈페이지, 네이버 예약
ALT. 1 더현대서울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108

 


4. 인간을 선언하는 한 주 — 2026 서울국제도서전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 코엑스 A·B1홀이 책의 도시가 된다. 제68회 서울국제도서전이다. 국내외 18개국 530여 출판사가 모이는 한국 최대의 책 행사다.
 
올해 주제는 '인간선언 Homo duduri'다. 두두리는 옛 문헌 속 신화적 존재이자 대장장이를 뜻하는 말이다. AI가 1초 만에 답을 내놓는 시대에, 이 도서전은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틀릴 수 있지만 끝까지 묻는 존재, 효율보다 의미를 고집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말이다. 주제문을 소설가 김연수와 AI가 함께 썼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인간이 AI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써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다.
 
주빈국은 프랑스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프랑스를 읽다 Lire la France'라는 이름 아래 프랑스 대표 작가들이 서울로 온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방한도 이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힌 프랑스 작가가 독자들 앞에 직접 선다.
 
강연 예약은 프로그램 공개와 동시에 빠르게 마감된다. 가고 싶은 강연이 있다면 도서전 홈페이지를 미리 즐겨찾기에 넣어두는 것이 좋다.
 
< 전시 정보 >

  • 행사 장소: 코엑스 A·B1홀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513)
  • 전시 기간: 2026년 6월 24일 ~ 6월 28일
  • 티켓 정보: 얼리버드: 3,000~6,000원 / 일반 및 당일 티켓: 6,000~12,000원
  • 티켓 판매 일정: 얼리버드 티켓: 6월8일~6월12일 / 일반 티켓: 6월13일~6월23일 / 당일 티켓: 6월24일~6월28일
  • 예매 정보: 서울국제도서전 공식 홈페이지, 네이버 예약
코엑스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513

 


마무리하며

죽음을 화폭에 담는 사람, 빛이 닿는 인간의 얼굴을 평생 그린 사람, 파리의 컬렉션을 서울 한강변으로 가져온 사람들, 그리고 책을 사이에 두고 독자와 작가가 한 공간에 모이는 시간이 6월에 다가온다. 6월의 이 자리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품고 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고, 무엇을 남기고, 무엇 앞에서 멈추는가. 대답이 없어도 괜찮다. 그 질문을 품은 채 한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것, 그것으로 충분한 여름이 시작된다.


About Author

faith.log

신앙과 일상을 잇는 기록. 작은 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삶의 깊이를 나누는 온라인 매거진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