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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후스의 신학: 오직 성경 위에 세운 교회와 성직

by faith.log 2026. 5. 25.

얀 후스의 신학: 오직 성경 위에 세운 교회와 성직

지난 root.log에서는 얀 후스의 생애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그의 신학 사상을 다루고자 한다. 얀 후스가 종교개혁의 선구자라는 사실은 그의 생애에서도 확인되지만, 그의 신학을 들여다볼 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그의 신학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가 종교개혁가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던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점은, 후스가 단순한 교회 비판자가 아니라 말씀 위에 교회를 다시 세우려 했던 개혁자임을 증명한다. 이 글에서는 그의 신학 가운데 교회론, 성경론, 성직론을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이시다

얀 후스의 저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에 관하여(De Ecclesia)≫이다. 후스는 이 책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교회는 그가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집으로 그 안에서 사역하는 제사장들이 있고, 그리스도의 의미에 따른 교회는 그리스도의 법 아래 있는 모든 회중을 말하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 교회가 있다. 예정되고 미리 알려진 양과 염소이다.

 
후스는 교회를 예정되고 미리 알려진 양과 염소로 구분한다. 눈에 보이는 '지상의 교회'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교회'를 구별한 것이다. 나아가 그는 '보편적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적 몸으로 정의하면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후스의 교회론은 어거스틴의 교회론에 기초하며 위클리프의 입장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동시에 이것은 중세 로마 가톨릭이 계급적 지배 구조 속에서 스스로를 하나님의 교회와 동일시하던 관행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이었다. 후스는 현재 선택된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원한 은총에서 배제될 자가 있을 수 있다고 분명히 주장했다.

세상적인 생각에 의하면 비록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머리나 교회의 일원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하나님 앞에서 악마의 지체들이다.

 
후스는 교황과 사제들의 삶이 구원받은 자의 삶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들은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는 교황이 교회의 머리를 이루고 고위 성직자들이 교회의 몸을 이룬다는 당시 로마 가톨릭의 주장을 정면으로 논박하는 것이었다. 후스는 눈에 보이는 지상의 교회에서 첫째가 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꼴찌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교회 지도자들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결국 후스의 교회론은 부정 축재, 성적 방종, 알코올 중독이 만연하던 당시 사제들의 비도덕적이고 비성경적인 삶에 대한 신랄한 논박이었다.


신앙과 행위의 최상의 규칙, 성경

후스는 위클리프의 성경 이해에 영향을 받아 성경을 교회의 유일한 권위로 삼고 그 최고 권위를 강조했다. 따라서 성경에 위배되는 교황의 교령, 특히 교황 무오설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문서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했다. 그는 로마 가톨릭의 교황과 고위 사제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옹호하기 위해 성경을 파렴치하게 왜곡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법인 성경이 교회의 모든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교회에 관하여≫의 거의 모든 곳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 후스의 방식 자체가, 성경은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최상의 규칙이라는 그의 고백을 몸소 실천한 것이었다. 성경을 규범으로 삼는 이 원리야말로 그가 종교개혁의 선구자임을 가장 분명하게 입증하는 증거이다.
 
후스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한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진리를 이해하고, 그 진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말씀에 순종하려는 의지가 자발적으로 일어나 삶과 행위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성경 이해를 바탕으로, 후스는 평신도들이 성경에 직접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리하여 1406년에 신약성경 전권과 시편, 잠언을 묶은 체코어 성경, 이른바 '성 미쿨로프스키 성경'을 출판했다.


참된 사제의 표지

후스가 1413년에 저술한 ≪성직에 관하여≫는 매우 실천적인 목적에서 쓰였다. 로마 가톨릭에 의해 파문당한 후 시골로 피신해야 했던 그는, 베들레헴 예배당의 회중에게 더 이상 직접 설교할 수 없었기에 글로써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 글에서 후스는 세상에는 세 가지 이단이 있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법에서 돌아서는 '배교', 하나님의 능력을 모독하는 '신성모독', 그리고 영적인 것을 비영적인 것과 맞바꾸는데 동의하는 '성직 매매'이다. 배교는 하나님의 법에 대한 거부이며, 신성모독은 거룩한 믿음에 대한 능멸이며, 성직 매매는 영적 질서 전체를 뒤흔드는 이단이다.

성직 매매는 영적 나병으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영적 기적 없이는 치료하기 매우 어렵다. 더욱이 이런 병은 전염되므로 성직 매매자는 다른 사람들을 전염시킨다. 따라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성실히 이것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악행에 맞서기 어려우므로, 성직 매매는 반드시 널리 알려야 하는 죄악이다.

 
당시에 사제직은 사회적 인정과 경제적 풍요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후스는 이러한 성직 매매의 뿌리를 구약의 게하시와 신약의 마술사 시몬에게서 찾았다. 게하시는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준 대가로 선물을 받으려 했고, 시몬은 사도들에게 돈을 주어 안수를 통해 성령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사려 했다. 후스는 이 두 인물이 당대 성직 매매자들의 전형이라고 경고했다.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소망 안에서 사제가 된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고, 하나님께 바르게 기도하도록 가르치기 위함이다.

 
후스가 그린 참된 사제는 자신의 야망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세속적 안락보다 양 떼의 영적 안위를 우선시하는 사람이다.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정직하게 살고, 허세와 악덕과 사치를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를 닮아 그분께 순종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모든 선행을 그리스도께 드림으로써 성도들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모든 힘을 다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후스의 일관된 요구였다.


후스의 신학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후스의 신학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의 성경론은 신앙인이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것이 유명한 성직자나 신학자의 말이 아니라 성경 그 자체임을 상기시킨다. 우리의 신앙과 삶을 다른 무엇이 아닌 성경과 대조하며 점검해야 한다는 원리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오늘날 AI의 발달로 방대한 양의 그릇된 정보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분별한 정보의 홍수에 흔들릴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만을 삶의 빛으로 붙들고 나아가야 한다.
 
그의 교회론은 단순히 교회에 출석한다는 사실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목회자와 교회 직분자들도 자신이 가진 직분을 구원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신 교회에 참여하여 그분의 몸 된 교회와 연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를 망각할 때, 우리는 중세의 타락한 사제들이나 교황들과 다를 바 없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의 성직론은 특히 총회와 노회에 연결된 목회자와 장로들에게 엄중한 경고가 된다. 하나님의 종을 길러내는 신학교를 수익 사업의 수단으로 여기는 이사회의 행태가 성직 매매와 무엇이 다른가. 교회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세습의 문제 또한 이 경고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종교개혁가들의 고백처럼 신앙의 핵심이 오직 성경임을 다시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 온전히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고, 오직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믿음의 선진들이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나그네로서 하나님 나라라는 본향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의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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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일상을 잇는 기록. 작은 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삶의 깊이를 나누는 온라인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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