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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교회는 왜 사순절을 지키지 않는가

by faith.log 2026. 3. 25.

필자는 현재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교회의 주류 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를 항상 의식하며 살아가지는 못하지만,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순절도 필자에게는 그런 경우 중 하나였다.
 
물론 필자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에 속한 교회이다 보니 사순절을 특별히 강조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활절이 다가오면 고난주간을 지키는 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문화였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사순절에 대한 강조도 점차 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사순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작년 사순절 기간이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부활절이 다가오면서 관련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던 중, 사순절에 대한 자료들의 대부분이 가톨릭 기반의 단체들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탄절이나 추수감사절, 부활절 등 여러 절기에 대해서는 개혁주의를 따르는 단체들도 다양한 자료와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데, 사순절만큼은 왜 가톨릭 기반의 단체들이 주로 생산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물음이 필자로 하여금 개혁주의 관점에서 사순절을 다시 바라봐야 할 필요를 느끼게 만들었고, 종교개혁가들과 성경을 통해 사순절을 살펴보도록 이끌었다.


사순절에 대한 칼빈의 입장

그렇다면 종교개혁가들은 사순절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떤 주장을 펼쳤을까. 놀랍게도 종교개혁가들은 하나같이 사순절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특히 개혁주의와 장로교 전통에 속한 종교개혁가들에게서 이러한 특징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4권 12장 20절을 통해 사순절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사순절을 지키는 미신적인 행위들이 만연되었었는데, 그것은 일반 백성들이 그 기간 동안에는 하나님께 무언가 특별한 섬김의 예를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한 목회자들도 그것을 그리스도를 닮는 거룩한 행위로 높이 장려했기 때문이다.”

 
칼빈은 사순절을 미신적인 행위로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는 『기독교강요』 2권 8장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다루면서 예배 규례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하나님께서 정하지 않은 행위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포함시키는 것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지적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강요』 4권 10장에서는 성경에 제정되지 않은 교회의 여러 전통들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비판한다. 칼빈은 이러한 전통들이 구원으로 이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을 오도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는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이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받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양심들에게 아무것도 의무로 부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입장은 앞서 언급한 4권 12장 20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예수님께서는 사순절을 통해 성도들에게 본보기가 되려고 금식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교훈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증명하시기 위해 하신 것이라는 주장이다. 더불어 그 금식을 반복하신 것이 아니라 단 한 번만 행하셨으며, 이를 절기화하지 않으셨음을 칼빈은 명확히 지적한다.
 
이 사순절 문제는 『기독교강요』 4권 17장에서 다루는 성찬과 비교할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순절과 달리, 성찬은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시고 지킬 것을 명령하셨다는 사실이 그 대비를 이룬다.


사순절에 대한 다른 종교개혁가들의 입장

이러한 칼빈의 입장은 다른 종교개혁가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먼저 츠빙글리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는 1522년 사순절 첫 주일인 3월 9일, 취리히의 인쇄업자 크리스토프 프로샤우어의 작업장에서 열두 명이 함께 훈제 소시지를 나눠 먹으며 의도적으로 사순절 금식 규정을 어기는 현장에 있었다. 직접 먹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함께했던 츠빙글리는 이 사건을 설교로 공개적으로 옹호했다. 이것이 바로 스위스 종교개혁의 공식적 출발점으로 간주되는 이른바 '소시지 사건’이다.
 
그는 이 설교에서 사순절 준수가 기독교 복음의 일반적 실천과 양립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사도행전 10장과 골로새서 2장 16절을 인용하여 자신의 논거를 세웠다. 그리고 교회의 어떤 지도자도 금식을 공통 법으로 강제할 권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누구의 금식도 금하지 않는다. 다만 강제하지 못하게 할 뿐이다.”

 
존 낙스 역시 예배에서 성경이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만 행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성탄절·부활절·삼위일체주일을 스코틀랜드 교회력에서 제거했다. 성탄절조차 스코틀랜드에서 공식적으로 지켜진 것이 상당히 최근의 일이었다는 사실은 놀랍기까지 하다. 그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종교개혁의 핵심 원리를 바탕으로 사순절을 거부했다.

"하나님의 음성에 불순종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의 계명을 악하게 어기는 것만이 아니라, 선한 열심이나 선한 의도로라도 하나님이 명시적 말씀으로 명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의 영예나 섬김을 위해 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종교개혁가들의 입장은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정신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되며,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웨스트민스터 총회 공예배 모범』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다.

"복음 아래 성경이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한 날은 주일, 곧 기독교적 안식일뿐이다. '거룩날(성일)'이라 통칭되는 절기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가 없으므로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들의 현실

이러한 종교개혁가들의 입장과 『웨스트민스터 총회 공예배 모범』의 선언이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들에서 어떻게 살아 있는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살펴보면 놀랍게도 미국과 유럽의 개혁주의 교회들과 한국의 개혁주의 교회들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 정통장로교회(OPC), 북미개혁장로교회(RPCNA), 북미연합개혁교회(URCNA), 캐나다 개혁교회, 네덜란드 해방교회 등은 사순절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 좀 더 복음주의적 성향으로 평가되는 미국장로교회(PCA)도 총회 차원의 별도 지침은 없지만, 일부 교회들의 개별적 움직임을 제외하고는 전통적으로 사순절을 지키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의 개혁교회들은 슬프게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은 가톨릭과 동일하게 재의 수요일과 사순절 첫 주일을 교회력에 편입시켜 지키고 있다. 특히 이러한 움직임이 WCC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이것이 복음의 순수성을 포기하는 방향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다행히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고신·예장합신)에서는 개혁주의 전통에 따라 사순절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에서는 사실상 이를 묵인한 채 개 교회의 자율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한국의 개혁주의 장로교회들 대부분이 사순절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거나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종교개혁가들의 입장은 물론, 미국과 유럽의 개혁주의 교회들과도 완전히 동떨어진 모습이다.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왜 한국 개혁주의 교회들은 종교개혁가들이 목숨을 걸고 성경으로 돌아가려 했던 그 흐름의 하나인 사순절 폐지를 거부하고, 다시 사순절을 수용하려 하는 것일까. 그것이 성경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성공 중심·행사 중심의 신앙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바다. 결국 가톨릭이 사순절을 정하게 된 잘못된 이유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 개혁주의 교회들의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혁주의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먼저, 종교개혁가들이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전통들을 따르거나 만들어내는 것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의 순수성은 작은 타협에서부터 조금씩 허물어질 수 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도, 공동체적으로도 성경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 신앙 형식들은 따르지 않고, 성경이 명시한 신앙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우리는 사순절이라는 또 다른 절기를 따라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매 주일 주님께 나아가 드리는 예배 자체가 이미 그분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행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순절을 지키는 것보다 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올바르게 회복하는 것이 훨씬 본질적이다.
 
마지막으로,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가 그의 글 「종교개혁자들이 폐한 사순절에 대하여」에서 남긴 다음의 말을 붙잡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모든 우리의 시간을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빛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의 삶 전체가 주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특정한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명하신 삶을 날마다 살아가는 것—그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일상에서의 자세다.
 


<참고 문헌>
존 칼빈. 『기독교강요』 2권 8장; 4권 10장; 4권 12장; 4권 17장. 원광연 역.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5.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총회 신학연구위원회 역. 영음사, 2024.

이승구. 「종교개혁자들이 폐한 사순절에 대하여」. 바른믿음. 2017. https://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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