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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여명을 밝힌 신학자, 존 위클리프 - “새벽별"이라 불린 그의 신학이 오늘 우리에게 남긴 것들

by faith.log 2026. 2. 27.

14세기 말, 로마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 있었다. 교황의 한 마디가 왕의 운명을 좌우했고, 성경은 평신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봉인되어 있었다. 이 어둠 속에서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30-1384)는 홀로 성경의 등불을 들고 일어섰다. 훗날 종교개혁자들이 "새벽별"이라 부른 그는 얀 후스와 마르틴 루터, 그리고 칼빈에 이르기까지 종교개혁의 신학적 토대를 닦은 선구자였다. 이번 root.log에서는 위클리프의 세 가지 핵심 신학—교회론, 성경론, 성찬론—을 살펴보며, 그의 목소리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교회론: 참된 교회는 제도가 아닌 하나님의 선택 위에 선다

위클리프가 활동하던 시대는 복잡한 권력 구도 속에 있었다. 국내적으로는 왕권과 교황권이 교회 재산의 소유권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국외적으로는 두 명의 교황이 동시에 존재하는 교황청의 대분열(1378-1417)이 교회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었다. 위클리프는 이러한 시대적 혼란 속에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물었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하여"와 "시민 통치권에 대하여"라는 두 논문에서 통치권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그의 논지는 명확했다. 하나님만이 최고의 주권자이시며, 모든 세속적·교회적 통치권은 그분의 은혜로 위탁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제들은 세속 재산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으며, 시민 지배자들은 타락한 성직자들로부터 그 재산을 정당하게 환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시민 지배자들에게는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통치권을, 교회에는 오직 영적인 것들에 대한 통치권만을 주셨다는 이 원리는, 교황청의 세속적 지배 야욕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었다.
 
위클리프의 교회론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1378년 말에 완성한 [교회에 관하여]이다. 그는 이 논문에서 참된 교회를 "하나님의 예정의 은혜로 선택된 사람들의 회합"으로 정의했다. 즉, 참된 교회는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들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교회'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제도 교회의 구성원이라는 사실만으로는 구원의 증거가 될 수 없다. 교황이든, 추기경이든, 주교든—그 어떤 직위도 보이지 않는 교회의 일원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성직 서임이 사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삶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실함만이 참된 사제의 조건이 된다. 위클리프에게 교회의 진정한 중심은 '사람'이나 '제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이었다.
 
이러한 교회론은 자연스럽게 교황직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1379년 가을 발표한 "교황의 권세에 관하여"에서 그는 교황직의 신적 제정설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단순함과 청빈함을 따르지 않는 교황은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른 최초의 인물이 바로 위클리프였다. 훗날 칼빈도 그의 뒤를 이어 같은 표현을 사용했으며, "기독교 강요" 제4권 5장에서 교황직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비판했다. 위클리프의 교회론은 얀 후스를 거쳐 종교개혁 전체에 흘러 들어간 신학적 강물이었다.

2. 성경론: 성경은 모든 권위 위에 있는 최고의 권위다

위클리프의 교회론은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깊은 신학적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었는데, 바로 성경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에게 성경은 교회의 전통이나 교황의 교령보다 월등히 높은 권위였다. 참된 교회를 판별하는 기준도, 교회가 준수해야 할 신령한 메시지의 핵심도, 모두 성경에 있었다.
 
1378년에 저술한 [성경의 진리에 관하여]에서 위클리프는 이렇게 선언했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지고의 권위이며 신앙의 기준이고 모든 인간적 완전함의 기준이다." 이 단호한 선언은 훗날 종교개혁의 핵심 원리가 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선구적 표현이었다. 그에 따르면 교회의 전통, 공의회의 선언들, 교황의 칙령들, 그리고 모든 교리 해설은 반드시 성경이라는 시금석 앞에서 검증받아야 한다.
 
그러나 위클리프는 선언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성경의 권위가 성직자들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평신도들도 성경을 소지하고 읽을 권리가 있으며, 성경은 마땅히 자국어로 읽히고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로마 가톨릭이 평신도의 성경 읽기를 금지하고 자국어 번역을 이단시하던 상황에서, 이것은 대단히 급진적인 선언이었다.
 
이 확신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 바로 성경 번역 프로젝트였다. 1380년 8월부터 그는 라틴어 불가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고, 1382년에 신약성경을 완성했다. 그의 죽음 이후인 1384년에는 제자들에 의해 구약성경도 완성되었다. 가톨릭은 이 번역 성경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불태웠지만, 필사본들을 통해 그 말씀은 살아남았다. 성경을 사람들의 손에 쥐어 주려 했던 위클리프의 열정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3. 성찬론: 미신이 아닌 말씀 위에 세워진 성례

위클리프의 개혁적 신학은 성찬론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380년에 저술한 [성찬에 관하여]에서 그는 로마 가톨릭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인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화체설이란, 미사 중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높이 들어 축사할 때 그 실체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실제 변화한다는 교리다. 이 교리는 사제의 중재 없이는 구원의 수단에 접근할 수 없다는 논리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로마 가톨릭과 성직자 계층의 권위를 공고히 하는 데 활용되었다.
 
위클리프는 이 교리가 성경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미신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성만찬 안에서 물질적·육적으로 임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이고 성례적이며 효과적으로 임재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성체를 볼 때 이것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 성례적으로 성체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믿어야 한다. 이 집합체는 하나님의 축복과 권능에 의해서 효력을 지니며, 그래서 떡과 포도주는 파괴되지 않는다."

 
이 주장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많은 지지자들이 이 입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떠났다. 1382년 런던의 도미니크 수도회는 회의를 소집하여 위클리프의 성찬론을 포함한 열 가지 견해를 이단으로 공식 정죄했다. 그러나 위클리프는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이탈도, 교회의 정죄도, 그가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를 포기하게 만들지 못했다.

위클리프가 오늘 우리에게 묻는

위클리프의 신학을 돌아보면, 한 가지 일관된 흐름이 보인다. 그것은 모든 인간적 권위와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우는 태도다. 교회론에서도, 성경론에서도, 성찬론에서도 그의 질문은 언제나 동일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그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는 다르지만, 이 질문의 무게는 조금도 가볍지 않다. 오늘날에도 성경의 기준에서 벗어난 가르침들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권위'라는 외투를 입고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도자의 지위가 진리를 보증해 주지 않는다는 위클리프의 통찰은, 14세기 옥스퍼드의 강의실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위클리프는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 것을 넘어, 목숨까지 내걸고 올바르지 않은 것에 맞섰다. 그 용기의 뿌리는 성경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였다. 이번 root.log를 통해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이 질문 앞에 서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성경 위에 서 있는가? 우리가 따르는 전통은 말씀의 시금석 위에서 검증받은 것인가? 위클리프의 신학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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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일상을 잇는 기록. 작은 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삶의 깊이를 나누는 온라인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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