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태울 수 없었던 말씀의 씨앗
지난 root.log에서는 종교개혁의 중심 인물인 마르틴 루터의 생애와 신학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루터는 종교개혁의 시작점이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되어 온 질문과 저항의 한 정점이었다. 루터 이전에도 이미 교회의 타락을 직시하고, 성경과 하나님의 주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친 인물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주목할 인물은 ‘종교개혁의 새벽별’이라 불리는 존 위클리프다. 그의 이름은 루터만큼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종교개혁의 신학적 토양을 가장 이른 시기에 갈아엎은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알려지지 않은 시작, 그러나 분명한 시대의 사람
위클리프는 존경받는 사제이자 옥스퍼드 대학의 저명한 교수였으며, 철학과 신학 양쪽에서 명성을 얻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사후 로마 가톨릭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면서, 그의 가족과 친척들에게까지 박해가 이어졌고, 그와 관련된 자료 상당수가 의도적으로 폐기되었다. 그 결과 그의 정확한 출생 연도와 어린 시절은 오늘날까지도 분명히 전해지지 않는다.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그는 에드워드 2세가 통치하던 시기인 1324년경, 잉글랜드 요크셔의 소영주 가문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옥스퍼드에서 형성된 신학적 뿌리

위클리프는 16세 전후로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옥스퍼드는 중세 스콜라 철학의 전통 위에 새로운 지적 움직임이 공존하던 공간이었다. 로저 베이컨, 윌리엄 오캄 등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이들은 추상적 사변에 머무는 신학을 비판하며 경험과 관찰을 강조했다. 특히 오캄은 교황청의 사치와 부패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인물이었으며, 하나님의 절대적 자유와 주권을 강조했다.
그러나 위클리프는 이와 더불어 어거스틴적 전통, 특히 은혜와 예정에 대한 사상을 깊이 수용했다. 로버트 그로스테스트, 토마스 브래드워딘 등을 통해 계승된 이 전통 속에서 그는 인간 구원이 인간의 판단이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위클리프의 신학은 분명히 이후 종교개혁, 특히 개혁주의 신학과 맞닿아 있다.
교회의 타락을 향한 공개적 비판

위클리프가 옥스퍼드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탁발 수도사 문제였다. 일하지 않고 구걸에 의존하며 교황청의 권위로 보호받던 수도사들의 모습은 그에게 교회의 도덕적 타락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이들을 향해 “사회에 치욕을 안기는 존재”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이는 곧 정치적 파장을 낳았다.
당시 잉글랜드의 귀족들과 국왕은 교황청의 재정적 간섭과 권위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위클리프의 주장은 이들에게 환영받았다. 그는 에드워드 3세의 신학적 조언자로 활동하며, 『하나님의 통치에 관하여』, 『세속 정권에 관하여』 등을 통해 “모든 통치는 하나님의 통치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교황보다 왕의 권위를 우위에 두고, 교회의 재산 축적을 강하게 비판한 그의 사상은 백성과 귀족의 지지를 동시에 얻었다.
말씀으로 돌아가려는 결단

위클리프의 개혁은 제도 파괴가 아니라 말씀 회복에 있었다. 그는 성경을 라틴어에 가두어 둔 교회 구조 자체를 문제 삼았고, 결국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단순한 번역 사업이 아니라, “말씀의 주인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며, 교회의 사명은 말씀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 것”이라는 신학적 선언이었다.
그는 또한 화체설을 비판하며, 예배의 본질이 형식이 아니라 믿음과 이해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 모든 주장은 교회의 권위를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었고, 결국 그는 공식적으로 이단 판정을 받게 된다.
죽음 이후에도 계속된 박해, 그리고 실패한 침묵

1384년, 위클리프는 자신의 교구인 러터워스에서 생을 마쳤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는 그를 공식적인 이단으로 정죄했고, 1428년 그의 시신은 무덤에서 파헤쳐져 불태워진 뒤 강물에 뿌려졌다. 그러나 그 재를 강에 던진 행위는 위클리프의 사상을 지우기보다는, 오히려 그가 뿌린 씨앗이 어디까지 흘러갔는지를 증언하는 장면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근거한 진리는 불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맺으며: 새벽별이 남긴 질문
위클리프는 종교개혁을 완성한 인물이 아니라, 새벽을 연 사람이었다. 그는 “교회는 누구의 것인가”, “말씀은 어디에 있는가”, “구원은 누구의 주권 아래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이른 시기에, 가장 위험한 방식으로 던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과연 교회를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제도를 지키고 있는가. 말씀을 전하고 있는가, 아니면 소유하고 있는가.” 종교개혁의 새벽별은 이미 졌지만, 그가 비춘 질문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About Author

faith.log
신앙과 일상을 잇는 기록. 작은 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삶의 깊이를 나누는 온라인 매거진입니다.
'root.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마르틴 루터의 신학 사상 | 종교개혁이 남긴 신학의 뿌리와 오늘 우리를 향한 불편한 질문 (6) | 2025.11.25 |
|---|---|
| 마르틴 루터, 하나님이 예비하신 종교개혁의 불씨 | root.log (3) | 2025.10.25 |
| 중세의 암흑기와 종교개혁의 씨앗 | 종교개혁사 | root.log (8) | 2025.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