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여행을 계획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맛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다양한 테마파크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제주도에는 기독교인으로서 방문할 만한 장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 이번 step.log에서는 제주도 여행 중 신앙을 새롭게 점검하고 묵상할 수 있는 장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이러한 장소들 중 다수가 제주순례길 위에 자리하고 있기에, 순례길을 중심으로 여정을 계획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선택이 될 것이다.
복음이 뿌리내린 길을 따라 — 제주 순례길
제주 순례길은 척박했던 제주 땅에 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길을 따라 묵상하며 걷는 순례의 길이다. 2025년에는 이 길을 따라 걷는 걷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제주 순례길은 총 다섯 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제1코스 순종의 길]은 애월에 위치한 금성교회에서 시작된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독립운동에 헌신한 조봉호 선생의 신앙과 정신을 만나게 되고, 제주 4·3의 비극 속에서 순교한 제주 출신 첫 목사 이도종 목사의 생가를 들러 그의 어린 시절 흔적도 확인할 수 있다.
[제2코스 순교의 길]은 이도종 목사가 청년 시절 섬겼던 협재교회에서 시작하여 조수교회를 거쳐 오름과 곶자왈을 통과하는 길이다. 제주 고유의 자연과 삶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동시에, 길의 끝에서 이도종 목사의 순교터를 마주하며 자신의 신앙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제3코스 사명의 길]은 조수교회에서 시작하여 수월봉을 지나 노을해변을 따라 걷는 코스다. 제주 4·3 당시 대정 지역 주민들을 보호했던 조남수 목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위기의 시대에 교회가 지역 사회에 어떤 존재였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제4코스 화해의 길]은 이도종 목사 순교터에서 시작된다. 한국전쟁 당시 세워진 강병대 교회와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한 농어촌 교회들의 사연을 접하며, 신앙인으로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묵상하게 된다.
[제5코스 은혜의 첫 길]은 1908년 이기풍 목사가 제주도 산지포에 도착한 이후 펼쳐진 선교의 여정을 따라가는 길이다. 제주도에 복음이 처음 뿌리내린 과정을 확인하는 동시에, 제주 교회 초대 장로인 김재원·홍순흥 등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만날 수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교회 — '순례자의 교회'




제주 순례자의 교회는 [제주순례길 제3코스인 사명의 길] 위에 위치하며, 제주 올레 13코스와도 겹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큰 도로에서의 접근성이 좋아 도보 방문은 물론 차량 방문도 용이하다. 차로 방문할 경우 교회 바로 앞에 넓은 공터가 있어 주차에도 불편함이 없다.
순례자의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로 알려져 있다. 교회 건립 취지를 보면, 교회다움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며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특징들을 담아내고자 이처럼 작은 규모로 건축했다고 적혀 있다.
실제로 좁은 문을 통해 교회 부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 지나치게 크고 화려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교회 건물 뒤편 현무암 위에 세워진 나무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지고 오르셨던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교회 내부는 서너 명이 함께 기도하고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아담한 규모이며, 기타도 놓여 있어 소수의 방문객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교회 내부에서 바깥의 나무 십자가가 그대로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내부의 불을 끄면 외부에 세워진 십자가가 더욱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는데, 이를 통해 세상의 화려함과 분주함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주님을 더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순교자의 피로 세워진 교회 — '대정장로교회'







제주 대정장로교회는 [제주순례길 제4코스인 화해의 길] 위에 위치한다. 이 교회의 가장 큰 의미는 이도종 목사 순교의 발자취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대정장로교회는 이도종 목사가 마지막으로 부임했던 교회이다. 그는 제주 4·3의 혼란 속에서도 "내가 가지 않으면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지 않느냐"라는 말을 남기고 위험을 무릅쓰고 교회로 향하다가 순교했다.
차량 방문의 경우, 인근에 위치한 제주 추사관(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예술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삶과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여행지)의 주차장을 함께 이용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하다. 추사관 주차장 화장실 건물 옆 돌계단을 오르면 대정장로교회로 바로 이어진다.
교회 앞마당에 들어서면 이도종 목사 기념비와 유해 봉안비를 마주하게 된다. 그 중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산방산 돌로 새긴 순교 기념비다. 대정장로교회 교인들이 이도종 목사의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 그리고 그가 마지막에 흘린 피의 값을 결코 잊지 말자는 마음으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제주의 돌이 대부분 구멍 뚫린 현무암이기에 산방산까지 직접 가서 구멍 없는 돌을 캐고 날라 글을 새겨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기념비 앞에 서면,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으로서 내 믿음이 과연 무엇을 향해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정장로교회 예배당은 상시 개방되어 있어, 순례길을 걷다가 들르거나 목적지로 삼아 방문하든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갖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에서 드리는 기도는 그 어느 곳에서의 기도와도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노아의 방주를 품은 교회 — '방주교회'



마지막으로 소개할 장소는 제주 방주교회이다. 앞서 소개한 교회들과 달리 제주순례길에 포함된 곳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 속에서 신앙의 상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비신자일행과 함께 제주를 방문한 경우에도 거부감 없이 함께 방문하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방주교회는 재일교포 건축가로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한 이타미 준이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설계한 교회다. 2009년 건립 이후 2010년 건축물 대상을 수상하며 아름다운 건축 명소로 널리 알려졌고, 현재는 신자뿐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도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방문할 만큼 국제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교회가 관광지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예배가 드려지는 공간이 평일에도 일반인들에게 열려 있다는 것은, 교회와 사회 사이에 자연스러운 접점을 만든다는 점에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볼 여지가 충분하다.
교회 외부는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예배당 내부는 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요일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개방된다. 수요기도회가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에 진행되므로, 제주 여행 중 수요예배에 참석해보는 것도 특별한 은혜의 경험이 될 것이다.
제주에서 신앙의 여정을 함께
이번에 제주도에서 이러한 교회들을 방문하며 지난날의 제주 여행을 돌아보게 되었다. 여러 번 제주를 찾았지만, 신앙인으로서 지나치게 일반적인 관광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빚으신 자연 속에서 쉼을 누리는 동시에, 순교자들의 발자취와 복음의 흔적을 따라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야말로 신앙인에게 가장 온전한 제주 여행이 아닐까.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번 step.log에서 소개한 교회들과 제주순례길의 장소들을 여정 가운데 담아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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