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ep.log

서울에서 만나는 한국 기독교 선교의 역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정동제일교회, 새문안교회

by faith.log 2025. 12. 15.


서울 시청 주변을 걷다 보면, 이곳이 단지 행정의 중심지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깊은 층위가 겹겹이 쌓인 자리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정치와 외교, 근대 교육과 언론의 흔적뿐 아니라, 이 땅에 복음이 처음 뿌리내리던 시간 또한 이 거리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정동과 새문안 일대는 한국 기독교 선교의 출발점이자, 신앙이 ‘건물’과 ‘제도’를 넘어 한 사회 안으로 스며들던 과정을 증언하는 공간이다.
 
이번 step.log에서는 서울 시청 인근에 자리한 세 교회를 따라 걸으며, 한국 기독교 선교의 초기 역사와 그 신학적 의미를 함께 되짚어보고자 한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정동제일교회, 그리고 새문안교회는 서로 다른 교단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이 땅에서 복음이 삶의 언어가 되기까지의 공통된 헌신과 긴장을 함께 품고 있다.


1.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전통과 토착화 사이에서 드러난공교회 얼굴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흔히 성공회 서울대성당, 혹은 위치에 따라 정동성당으로 불린다. 이 교회의 역사는 1890년 11월, 고요한(Charles John Corfe) 주교가 정동 일대에 교회용 한옥과 부지를 매입하면서 시작되었다. 그해 12월 21일, ‘장림교회’라는 이름으로 첫 성탄절 감사성찬례가 봉헌되었고, 1891년부터 정기적인 주일 감사성찬례가 시작되며 본격적인 예배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현재의 예배당은 1911년 영국왕립건축협회 소속 건축가 아서 딕슨(Arthur Dixon)의 설계를 바탕으로 계획되었고, 1922년 9월 24일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재정 문제로 인해 1926년에는 원래 설계의 일부만 완공되는 데 그쳤다. 이후 1991년, 교회 창립 100주년을 맞아 원안에 따른 증축이 논의되던 중, 1993년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우연히 원 설계도가 발견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이 예배당은 영국 고딕 양식을 바탕으로 지어져 한국의 전통 교회 건축과는 분명히 다른 인상을 준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그 곁에 자리한 사제관(현 사목관)과 성가수녀회 건물이 한국 전통 한옥 양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성공회 선교가 단순한 ‘서구 이식’이 아니라, 보편적 교회의 전통 위에 지역 문화와의 조화를 고민했던 흔적으로 읽힌다.
 
특히 하늘에서 바라볼 때 성당 전체가 십자가 형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은 인상적이다. 예배당이라는 공간 자체가 신앙의 상징이 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이곳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와 “세상 속으로 파송된 삶”을 동시에 증언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칼빈주의 전통이 강조해 온 ‘전 삶의 예배’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공간은 예배와 삶의 분리를 거부하는 신학적 메시지를 조용히 전하고 있다.


2. 정동제일교회한국 개신교의 시작, 그리고 기억해야 선교의

 
정동제일교회는 1885년, 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가 제물포에 도착하며 시작된 한국 개신교 선교의 가장 초기 현장 가운데 하나다. 그는 같은 해 10월,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성찬식을 거행하며 복음 전파의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1887년 9월, 남대문 안 근처의 한옥을 구입해 예배처소를 마련하고 ‘벧엘예배당’이라 명명했다.
 
정동제일교회는 단순히 예배 공동체의 출범에 그치지 않고, 교육과 훈련을 통한 신앙 전수를 매우 이른 시기부터 실천했다. 1888년, 한국 개신교 최초의 여성주일학교와 남성주일학교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복음이 성별과 신분을 넘어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는 개신교적 확신을 잘 보여준다.
 
현재 정동에 자리한 서양식 예배당은 1895년 9월에 건축을 시작하여, 1897년 12월 26일 봉헌 예배가 드려졌다. 이 건물은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서양식 예배당으로,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256호로 지정되어 있다. 붉은 벽돌과 단정한 구조는 당시 선교사들이 추구했던 ‘말씀 중심의 예배’와 ‘절제된 신앙 태도’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교회 마당에 세워진 100주년 기념탑과 기념비(1992년 10월 설치)는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다. 이는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주었던 선교사들의 헌신을 기억함과 동시에, 한국 교회 역시 이제는 ‘받은 사랑의 빚’을 선교로 갚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선언하는 표지다. 칼빈주의가 말하는 교회의 사명은 자기 보존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파송임을 이 공간은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3. 새문안교회말씀과 문서, 그리고 도시 교회의 책임

 
새문안교회는 1885년, 장로교 선교사 호레이스 언더우드(Horace Underwood)가 서울 정동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외국인 중심의 예배였으나, 1887년 9월 공식적으로 교회가 창립되며 한국인 14명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로 자리 잡게 된다. 이는 단순한 선교 거점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실질적 출범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사역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문서선교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다. 그는 복음이 지속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언어와 문자,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했다. 그 결과 한영사전, 한영문법서, 그리고 한글 성경 출판이라는 중요한 결실이 이루어졌다. 이는 개혁주의 전통이 강조해 온 ‘말씀 중심성’이 단지 설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문화 전반으로 확장된 사례라 할 수 있다.
 
교회는 1907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1910년 5월 벽돌 교회당 건축을 시작했다. 이후 1972년 새로운 예배당이 세워졌으며, 현재의 예배당은 2019년 4월 입당감사예배를 통해 완공되었다. 아쉬운 점은 초기 예배당의 실물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지만, 교회 1층에 마련된 역사관을 통해 언더우드의 사역과 이전 교회 건물의 모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역사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교회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마련한 기억의 장소다. 교회는 언제나 ‘현재의 사역’에만 집중하기 쉽지만, 자신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기억할 때 비로소 방향을 잃지 않는다. 이는 칼빈주의가 말하는 교회의 자기 성찰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걷는 신앙, 기억하는 교회

서울 시청 근처에 위치한 이 세 교회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이곳은 복음이 이 땅에 뿌리내리기까지의 시간, 문화와의 충돌과 조화, 그리고 신앙이 사회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묵묵히 증언하는 장소들이다.
 
step.log로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과거를 향한 향수가 아니라 오늘의 교회를 향한 질문을 품는 일이다. 우리는 과연 이 신앙의 유산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가. 건물은 남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선교적 긴장과 책임 의식은 여전히 살아 있는가.
 
이 질문을 품은 채, 정동과 새문안을 다시 걷는 일은 지금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신앙의 순례가 된다.


About Author

 faith.log

신앙과 일상을 잇는 기록. 작은 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삶의 깊이를 나누는 온라인 매거진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