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가을은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계절이다. 선선한 바람, 드높은 하늘, 곡식과 과일이 풍성하게 익어가는 들판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감사를 떠올리게 된다. 추석과 단풍 여행,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누리기에도 좋은 시기다. 그래서 이 계절을 ‘감사의 계절’이라고 부르곤 한다. 추수감사절을 앞둔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역설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풍성할수록 더 감사하지 않느냐는 질문 앞에, 우리는 고개를 쉽게 끄덕이지 못한다. 한때 방글라데시가 세계 행복지수 1위라는 말이 있었다. 반면 경제적으로 앞선 한국은 자살률 OECD 1위라는 아픈 통계가 뒤따른다. 환경이 좋아진 만큼 만족과 감사가 늘어났다면 이런 수치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감사는 소유가 아닌 시선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교도소와 수도원의 환경을 비교하면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두 공간 모두 불편하고 제약이 많은 곳이다. 그런데 교도소에는 원망과 불평이 가득하지만, 수도원에는 찬송과 감사가 넘친다. 같은 환경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가 삶의 태도를 결정한다. 감사는 외적인 조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향한 시선이 바뀔 때 감사가 피어난다.

성경이 보여주는 초대교회 또한 그 진실을 증언한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교회들은 결코 평안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예배한 것이 아니었다. 갑바도기아의 지하 무덤, 이른바 카타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숨어든 성도들의 예배처소였다. 로마 제국의 박해, 특히 네로 황제 시절의 탄압은 잔혹함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감옥과 고문, 재산 박탈, 가족 상실, 심지어는 목숨까지 빼앗기는 일이 흔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러했다. 가난과 환난, 고향을 떠난 이산가족, 직장 상실, 순교의 위협 속에서도 그들은 믿음의 역사를 이루고,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이어갔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본이 된 교회라고 칭찬했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는 말씀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하나님의 자녀에게 감사는 선택지가 아니다. 신자에게 감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신앙의 실천이다. 상황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다.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의 결단이다. 그래서 감사는 기쁨을 낳고, 기도는 감사를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준다.

추수감사절의 기원 또한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의 여정은 기대와 달리 혹독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65일간의 대서양 항해,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겨울. 영양실조와 추위, 풍토병으로 102명 가운데 44명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이들 역시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그때 하나님은 원주민 이웃을 통해 도우셨다. 옥수수와 곡물을 가져다주고, 농사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은혜로 다음 해 풍성한 추수를 경험한 청교도들은, 도움을 준 원주민들을 초대해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다. 이 날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시작이다. 풍요가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의 원천이었다.
한국교회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조선 시대 순교자들, 일제강점기의 신사참배 강요, 6·25 전쟁 속 북한 공산당의 박해는 교회를 흔들었다.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가 신앙의 이유로 고문과 투옥, 죽음까지 감내해야 했다. 전쟁 이후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성도들은 성미를 드리고, 힘에 지나도록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리며, 매 기도회마다 엎드렸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었다.

잠언 17장 1절의 말씀은 이를 정확히 말해준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7:1)
눈에 보이는 풍성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마음이 삶을 세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초대교회와 초기 한국교회에 비하면 오늘 우리는 모든 것이 풍성하다. 예배의 자유가 있고, 하루 세 끼를 걱정하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신앙을 전할 수 있다. 그러나 불평은 더 많아 보이고, 감사는 더 작아져 보이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풍요 속에 감사가 사라진다면 오히려 그것이 신앙의 가장 심각한 위기다.
그래서 바울의 권면이 오늘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생의 각 장면에서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기를 원하신다. 감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믿음이고,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된다. 풍성한 가을, 추수감사절을 맞으며 우리의 시선을 다시 하나님께 고정하자.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의 고백을 회복하자.
감사의 계절을 넘어 감사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About Author

최종의
총신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영창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프리셉트 성경연구원의 연구원이자 강사로, 말씀을 삶 속에 새기며 신앙과 일상을 잇는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주님을 찬양하며, 주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여 선한 열매 맺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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