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경험한다. 그중에는 평소에는 무엇이든 책임질 듯 말하지만,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도망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신앙생활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은 흔하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역경과 고난 앞에서 그 믿음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성경은 이러한 신앙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딤후 3:5)라고 말씀하며, 결국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경고한다(약 2:17).
마가복음 15장 42~47절에는 이러한 대조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제자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들은 “죽기까지 따르겠다”(막 14:31)고 맹세했지만, 실제 고난이 닥치자 모두 도망쳤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며 저주까지 했다(막 14:71). 그러나 같은 장면에서 아리마대 요셉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막 15:43)
요셉은 부자였고(마 27:57), 존경받는 공회원이었으며, 의롭고 선한 사람이었다(눅 23:50). 그는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결의에 찬성하지 않았고(눅 23:51), 사회적 지위와 위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담대히 나섰다. 마가는 그가 “당돌히” 시신을 요구했다고 기록한다. 이는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참된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난 순간이었다.
이 일은 단순한 헌신에 그치지 않았다. 아리마대 요셉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예언 성취의 도구가 되었다. 이사야 53장 9절,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라는 말씀이 아리마대 요셉을 통해 성취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
참된 믿음은 단순한 지식이나 고백에 머물지 않는다. 믿음은 반드시 삶 속에서 열매로 드러난다. 순종과 헌신은 성령께서 주신 믿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우리는 말로만 믿는다고 하면서 삶으로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거짓 신앙을 경계해야 한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행동으로 드러나는 믿음이다.
아리마대 요셉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세상의 유익이나 자기 보존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과 나라를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은혜로 받은 믿음은 은혜로 헌신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믿음의 고백이 삶의 자리에서 작은 순종으로 이어질 때, 그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으로 증거 된다.
오늘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런 적용이 필요하다. 가정에서 사랑과 섬김을 선택하는 순간, 직장에서 정직과 성실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순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세워주는 작은 헌신의 순간들—이것이 곧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는 자리가 된다. 하나님은 이러한 작은 순종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예배로 만드신다.
행동하는 신앙은 거창한 결단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반복되는 작고 평범한 선택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증거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은 바로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드러나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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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의
총신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영창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프리셉트 성경연구원의 연구원이자 강사로, 말씀을 삶 속에 새기며 신앙과 일상을 잇는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주님을 찬양하며, 주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여 선한 열매 맺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