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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서 만나는 일본 기독교 선교의 역사

by faith.log 2026. 7. 15.

교토에서 만나는 일본 기독교 선교의 역사

일본을 여행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지역 중에 교토가 있다. 교토에 방문하는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전통적인 지역들을 방문하거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식당이나 상점, 카페들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교토는 단순히 관광지로만 의미가 있는 곳이 아니다. 기독교 선교의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실제로 일본의 여러 지역을 다니다보면 교회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교토는 그와는 다르게 상당한 수의 교회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오늘 step.log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도시샤 대학(同志社大学)과 신지마 구저(新島旧邸)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도시샤 대학은 일본 기독교 인재 양성의 요람이다

기독교 선교의 역사를 돌아보면 처음에는 외국인 선교사들을 통해서 복음이 유입된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이 그 나라 안에서 뿌리내리고 본격적으로 퍼져나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독교 신앙 안에서 배우고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그 나라를 변화시켜 나가는 인재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많은 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우고 기독교 인재를 양성하며 사역자들을 세워 나갔다. 이러한 방식이 일본 선교의 역사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일본 기독교 인재 양성의 요람인 도시샤 대학이다.
 
도시샤 대학은 신지마 조라는 사람과 아메리칸 보드(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s) 소속 선교사들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신지마 조는 1864년 미국으로 건너가 필립스 아카데미와 애머스트 칼리지, 앤도버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서구 대학의 학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일본인이 되었다. 1874년 일본으로 귀국한 그는 아메리칸 보드 선교사들(대표 인물로는 J.D. 데이비스가 있다)의 지원을 받아 1875년 11월 29일 교토에 도시샤 에이가쿠코를 설립했다. 신지마 조는 1876년 12월 3일 아메리칸 보드 선교사들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세웠는데, 이 공동체는 뒤에서 소개할 신지마 구저가 준공된 1878년 이후 그곳에서 예배를 이어가다가 1886년 예배당이 완공된 것을 계기로 정식으로 '도시샤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도시샤 대학'과 '도시샤 교회'는 현재 같은 캠퍼스 내에 위치하고 있다. 덕분에 도시샤 대학 캠퍼스를 둘러보다보면 다양한 선교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쇼에이칸, 도시샤 예배당, 유슈칸, 클라크 기념관, 해리스 이화학관이 초기에 세워진 건물들로 모두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설계자의 국적이 각각 달라서 양식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쇼에이칸, 도시샤 예배당, 유슈칸은 미국인이 설계했고, 해리스 이화학관은 영국인이, 클라크 기념관은 독일인이 설계했다.
 
도시샤 예배당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채플이 진행되고 있어서, 그 당시의 선교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학교 채플임에도 일반인에게 열려 있어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클라크 기념관 역시 옛 이름이 '신학관'이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한때는 신학교육의 중심지였고, 지금은 기독교 문화센터와 채플 공간으로 쓰이며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참고로 지금 실제 신학부의 강의와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은 1963년에 새로 지어진 신학관(神学館) 건물이다.
 
도시샤 대학의 입구에는 양심비라는 기념비를 발견할 수 있다. 설립자인 신지마 조가 만년에 도쿄에서 요양을 하던 중 학생 요코타 야스타다에게 보낸 1889년 편지의 한 구절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비문에는 "良心之全身ニ充満シタル丈夫ノ起リ来ラン事ヲ"(양심이 온몸에 충만한 청년들이 우리 학교로부터 다수 배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라고 적혀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자라난 온전한 마음을 가진 기독교적 인재들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도시샤 대학의 건학 이념을 확인할 수 있다.


도시샤 대학에는 일제시대 한국 기독교 지성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도시샤 대학 내부를 돌아보다보면 놀랍게도 한국 기독교 지성인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다. 윤동주는 1938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해서 1941년 졸업했다. 그리고 1942년 4월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학과에 입학했다가, 같은 해 10월 도시샤 대학 문학부 문화학과 영어영문학 전공으로 편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43년 7월 항일독립운동 사상범 혐의로 교토 시모가모 경찰서에 체포되었고,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반년 앞둔 시점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쳤다.
 
이러한 윤동주를 기려 1995년 2월 16일, '윤동주를 그리는 모임'과 도시샤 코리아클럽(현 도시샤 코리아동창회)이 협력해 시비를 건립했다. 비석에는 그의 대표작 〈서시〉 전문이 윤동주의 친필 그대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2025년 2월 16일, 도시샤 대학은 윤동주의 몰후 80주년과 시비 건립 30주년을 기념하며 도시샤 예배당에서 학위수여식과 추도예배를 함께 진행했다. 이는 1875년 개교 이래 첫 사후 명예학위였다. 당시 도시샤 대학 야츠다 에이지 총장은 윤동주의 시가 "언어와 민족의 벽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잇는다"고 평가했다.
 
윤동주의 시비 옆에는 정지용의 시비도 함께 서 있다. 정지용은 도시샤 대학 예과와 영문과에서 6년간 수학했다. 그는 도시샤 대학에 재학하는 중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귀국 후에는 한국 현대시단의 대표적 인물로 활동하며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안타깝게도 한국전쟁 중 북한으로 납북되어 이후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이러한 정지용을 기려 2005년 12월 18일, 윤동주 시비 옆에서 그의 시비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정지용의 교토 시절 대표작인 〈압천〉 전문이 일본어와 한글 두 언어로 시비에 새겨져 있다.
 
필자가 도시샤 대학에서 두 개의 시비를 방문하며 생각하게 된 것은, 선교사들과 한 명의 신앙인이 세운 교육기관이 단순히 자국의 기독교 인재만을 양성한 것이 아니라 타국의 유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지금 주어진 사역에 충성되게 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그 사역을 통해 어떤 일을 이루실지는 우리가 온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신지마 구저는 도시샤 대학의 출발점이다

도시샤 대학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는 신지마 구저가 있다. 신지마 구저는 신지마 조 부부의 사저로 1878년 9월에 준공되었다. 이 건물은 신지마의 보스턴 친구인 J.M. 시어스의 기부로 건축되었으며, 의사이자 선교사였던 W. 테일러의 조언을 받아 완성되었다. 이곳이 일본 기독교 교육 선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는 이 건물의 쓰임새에 있다.
 
신지마 구저는 단순한 사적 건축물이 아니다. 1875년 신지마 조가 도시샤 에이가쿠코를 처음 열었을 때는 정식 건물이 없어 다카마쓰 야스자네의 저택을 임시로 빌려 첫 수업을 시작했는데, 그 자리가 바로 훗날 신지마 구저가 세워진 자리였다. 즉 도시샤 대학이라는 학교의 출발점이 바로 신지마 구저가 있는 장소인 셈이다. 게다가 초기 도시샤에서 학생 수가 늘어났을 때는 임시 교실의 역할과 학교 운영을 위한 직원실, 대학 승격을 위한 모금 사무소 등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도시샤 예배당이 완공되는 1886년 이전까지 신지마 구저의 응접실이 예배 장소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즉 신지마 구저의 응접실은 도시샤 공동체의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선교 역사를 봐도 자신의 집을 예배의 처소로 내어준 경우를 많이 만날 수 있는데, 일본 기독교 선교의 역사에서도 같은 예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놓는 자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사역을 이루어 가신다. 필자는 물질적 가치만을 좇기 쉬운 오늘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필자는 어떤 자세로 나아가야 할지를 신지마 구저를 방문하며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기독교 선교의 핵심은 세계관 교육과 충성된 헌신이다

필자는 이번 step.log에서 다루는 도시샤 대학과 신지마 구저를 방문하면서 기독교 선교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든 신앙인의 사명은 복음 전파에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복음 전파에 있어서 중요한 사역이 무엇인지를 오늘의 장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 세계관 교육과, 하나님의 사역에 온전히 충성하는 헌신된 삶이다. 세상적 세계관이 강력한 힘을 얻고 있는 이 시대에, 기독교 세계관 교육을 통해 미래의 하나님의 일꾼들을 키워내는 일과 그 사역을 위해 지금 이 순간 충성된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오늘 소개한 두 장소를 통해 다시금 발견하게 된다. 교토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도시샤 대학과 신지마 구저를 찾아, 기독교 선교의 핵심을 직접 발견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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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일상을 잇는 기록. 작은 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삶의 깊이를 나누는 온라인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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