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 오기 전, 여름을 생각하다


어느덧 낮의 공기가 달궈지기 시작했다. 여름의 문턱에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것들이 있다. 뜨거운 햇볕, 짙푸른 녹음, 싱그러운 여름 과일들이다. 자연을 찾아 떠나기를 즐기는 필자에게 여름의 화창함은 더위와 습기라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 여름을 조금 일찍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서울 한남동 그라운드시소 한남에서 열리고 있는 성률 작가의 기획전, 〈여름을 닮은 우리〉다.
사라진 풍경들이 돌아오는 곳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작가 성률이다. 맑고 투명한 색채와 섬세한 묘사로 풍경 속 작지만 따스한 이야기를 전하는 그는, 유독 사라졌거나 언젠가 사라질 공간에 마음이 끌린다고 말한다. 작품 앞에 서는 순간, 그 말의 의미가 즉각 전해진다. 그의 그림 속에는 1990년대와 2000년대의 한국 풍경이 조용히 담겨 있다. 늘 주변에 있었지만 어느새 스러져간 것들 — 낡은 골목, 오래된 가게, 여름날의 골목 풍경 — 이 수채화 특유의 부드러운 결을 통해 되살아난다. 작품을 바라보는 동안 필자의 10대와 20대의 기억이 조용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필자는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정보화 시대를 거쳐 지금은 AI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변화의 속도는 가팔랐고, 그 속도를 따라가는 데 급급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 앞에서 문득 깨달았다. 변화의 폭풍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중에는 소중한 것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질적 풍요는 커졌지만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메말라가고 있다는 느낌의 근원이 어쩌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여름이라는 계절, 청춘이라는 시간


이번 전시의 중심은 여름이다. 그리고 여름의 푸름은 청춘의 반짝임과 닮아 있다. 인간의 삶을 계절에 빗대면, 10대까지는 봄을 살고, 20~30대는 여름을, 40~60대는 가을을, 그리고 70대 이후는 겨울을 산다. 그런 의미에서 여름은 삶에서 가장 뜨겁고 빛나는 시간이다.
전시는 '여름을 닮은 우리', '초록의 숨결', '부서지는 빛', '못다한 이야기', '구름 너머로'의 다섯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순서를 따라 걷다 보면 여름 같았던 우리들의 순수한 시절이 하나씩 기억 속에서 깨어난다. 여름 풍경과 여가의 장면들은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마지막 섹션의 새파란 하늘과 구름 앞에서는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구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매일이 구름처럼 순간마다 다른 빛깔과 모양으로 채워지며 흐르고, 아주 느린 속도일지라도 우리는 매일 조금씩 어제보다 단단한 존재가 되어간다고 말이다. 구름처럼 멈추지 않고, 저마다의 내일을 향해 흘러가는 중이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과거의 여름에 머물지 않고
<여름을 닮은 우리>는 4월 30일부터 9월 27일까지, 여름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여름이 끝나는 자리까지 열린다. 이 전시는 단순한 향수 여행이 아니다. 성률 작가의 수채화들은 과거의 아름다움을 불러오면서도, 거기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순간순간 쌓여온 시간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조용히 일깨운다.
너무 빠르게 달려가는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 나만의 속도를 찾고 싶다면 이번 여름 그라운드시소 한남의 문을 열어보기를 권한다. 여름의 빛깔 속에서 나의 여름을 기억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조용히 가늠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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