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구마모토, 책과 작가의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유명 관광지나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 혹은 분위기 좋은 카페일 것이다. 더 나아가 쇼핑이 주된 목적이 되는 여행도 적지 않다. 물론 이러한 여행들도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국의 거리에서 인문학적 감명을 받아보는 것이 더 깊은 여행이 된다. 이번 spot.log에서는 요즘 한국 여행자들에게 각광받는 여행지 중 하나인 일본 구마모토에서 책과 작가의 공간을 찾아가는 문학 여행을 소개한다.
책방지기의 안목이 빚어낸 공간, 다이다이 서점(橙書店)




faith.log 매거진의 독자라면 필자가 read.log에서 소개했던 《다이다이 서점에서》와 《책과 고양이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두 책의 저자 다지리 히사코는 구마모토 시내에서 'orange・橙書店(다이다이 서점)'이라는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책 속에는 이 서점을 무대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삶과 책을 연결하며 깊이 있는 사유로 이끌어준 그녀의 글이 마음에 오래 남았기에 직접 그 공간을 걸어보고 싶었다.
다이다이 서점은 구마모토 시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구마몬 빌리지와 구마모토 버스터미널이 있는 사쿠라마치 빌딩에서 도보로 5분 거리다. 현재의 위치는 2016년 구마모토 지진 이후 기존 건물에서의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옮긴 곳으로, 메인 도로에서 두 블록 안쪽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주황색으로 칠해진 서점 입구는 '다이다이(橙)'라는 이름—일본어로 감귤의 한 종류를 가리킨다—과 잘 어울린다.
독립서점의 분위기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양한 고서와 책·문화 관련 포스터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 마치 소규모 전시 공간에 들어선 듯한 인상을 준다. 계단을 올라 내부로 들어서면 조용하고 아늑한 서점이 펼쳐진다. 빼곡히 꽂힌 책들 사이로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지는, 그런 공간이다. 책방지기의 조용한 인사가 그 감성을 한층 깊게 만들어준다.
대형서점처럼 모든 책을 들여놓지 않기에 오히려 한 권 한 권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책방지기의 안목으로 엄선된 큐레이션 덕분이다. 책과 함께 소품들도 진열되어 있어,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 자체가 작은 발견의 연속이 된다.
내부가 넓은 편은 아니지만 창가를 따라 앉아 책을 읽거나 음료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다지리 히사코 작가가 독립서점을 열기 전 카페에서 시작했다는 이력이 느껴지듯, 음료의 맛도 수준급이다. 서점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방문을 넘어 일상의 소음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는 경험이 된다. 마치 다른 시간대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 같은, 그런 공간이다.
소설가가 되기 전의 시간이 머문 곳, 나쓰메 소세키 구거(旧居)




구마모토에는 또 하나의 작가 공간이 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우리에게 친숙한 나쓰메 소세키의 옛집, '夏目漱石 内坪井旧居(나쓰메 소세키 구거)'다. 흥미로운 점은 소세키가 구마모토에 머무는 동안에는 아직 소설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당시 현재의 구마모토 대학교 전신인 제5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했다. 그러나 구마모토에서의 경험은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곳은 그가 구마모토 재직 시절 1년 8개월간 살았던 집으로, 현재는 잘 보존·정비되어 기념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덕분에 그가 실제로 생활했던 공간을 직접 거닐며, 훗날 그의 작품을 이룬 시간들을 시대를 넘어 공유하는 경험이 가능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가 정원을 바라보며 글을 쓰거나 독서에 잠겼던 공간을 재현해놓은 장면이다. 같은 자리에 앉아 동일한 정원을 바라보며 그의 작품들을 떠올리는 일은, 단순한 관광과는 다른 차원의 경험이 된다. 주변 학교들에서 들려오는 학생들의 소리가 그가 교사로 일하던 시절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해주는 것도 묘한 감흥을 더한다.
상주하는 직원에게 궁금한 점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어 소세키의 삶과 작품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공간 자체가 지닌 고요한 아름다움이 인상적이다. 잘 보존된 일본 전통 가옥에서 정원을 내다보며 잠시 사색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일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 속에 들어선 기분이 된다.
영혼을 채우는 여행이 진정한 휴식이다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여행은 장소만 바뀌었을 뿐, 평소에도 하던 일들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맛집과 카페를 찾고 SNS에 올릴 사진을 찍는 것은 사실 일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다. 이번에 소개한 것처럼 영혼과 내면을 채울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정신적으로도 온전히 일상을 떠나보는 것, 새로운 영감으로 자신을 채우는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휴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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