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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나를 구성하고 있다 | 다지리 히사코, <책과 고양이 그리고 나의 이야기>

by faith.log 2026. 5. 20.

책은 나를 구성하고 있다 |
다지리 히사코, <책과 고양이 그리고 나의 이야기>

faith.log의 독자들이라면 필자가 지난 4월에 소개한 다지리 히사코의 <다이다이 서점에서>를 기억할 것이다. 필자는 그 책을 읽고 소개한 뒤에도 한동안 그 분위기에 깊이 빠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다지리 히사코가 쓴 책이 더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고, 그렇게 만난 것이 오늘 소개할 <책과 고양이 그리고 나의 이야기>다.
 
이 책에는 '활자중독자'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필자는 정말로 활자중독자가 된 것처럼 이틀 만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외부 일정으로 나가 있는 중에도 틈만 나면 펼쳐 들었을 만큼 흡입력이 대단했다. <다이다이 서점에서>에 이어 이 책 역시 read.log에서 반드시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이다이 서점에서>가 서점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책과 고양이 그리고 나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훨씬 풍부하게 담겨 있다. 작가가 읽어온 책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책 전체가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세 대목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책은 새로운 기억과 감정을 남긴다

작가는 레베카 브라운의 <몸의 선물>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에이즈로 죽음에 처한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간병인의 이야기인데, 작가는 그 중에서도 시나몬롤이라는 소재에 집중한다. 환자가 좋아해서 간병인이 늘 사다 주곤 했던 시나몬롤. 그러던 어느 날, 환자가 직접 시나몬롤을 사서 간병인에게 건네려 했지만 그날따라 몸 상태가 너무 나빠져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게 된다. 집에 남겨진 간병인은 그 시나몬롤을 발견한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읽은 뒤로, 시나몬롤을 보기만 해도 그 장면이 떠올라 슬픔이 밀려온다고 말한다. 눈물이 날 것 같아 그 감정이 잠깐 스치고 지나가도록 내버려 둔다고. 이 대목에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등장인물의 감정 속으로 빠져드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을 것이다. 특히 깊이 감명받은 책일수록 더욱 그렇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듯, 책은 독자가 직접 겪지 않은 일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등장인물이 느꼈던 감정을 독자 안에 새기고, 비슷한 상황을 만날 때 그 경험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눈물샘은, 느슨해지는 게 아니다. 흔히 나이 들어 눈물이 많아졌다며 노화현상처럼 말하지만, 우는 근력이 붙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책이 드러내는 나 자신

이 책에는 작가가 읽어온 수많은 책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책을 통해 드러난다고 말한다. 서점을 운영하는 그로서는, 자신이 큐레이션한 책들이 가득한 서가를 바라볼 때 마치 자기 자신이 노출되는 것 같다고.
 
이 대목에서 필자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책장을 떠올렸다.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 머릿속으로 훑어보니, 그 책들이 필자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인문학, 철학, 세계관 관련 책들이 가장 많았다. 대학 시절부터 철학과 세계관에 깊이 몰입했던 흔적이 책장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 책들이 필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최근에는 지금 소개하는 책처럼 책과 서점을 주제로 한 수필들을 즐겨 읽기 시작했다. 책장의 한켠이 이런 에세이들로 채워지면서, 필자 자신도 조금씩 더 감성적인 눈으로 일상의 소소함을 바라보게 된 것을 느낀다. 책은 그것을 읽는 사람을 만들어가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서가는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낸다. 손님 중에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벌거벗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부끄럽다고 한다.

책 속에 새겨진 기억들

책은 더 나아가 그 책을 읽던 시절의 기억을 함께 간직한다. 작가는 여러 책들을 소개하면서 그 책들 안에 당시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가 살던 지역에 큰 수해가 들었을 때 마침 읽고 있던 <인생의 수레바퀴>가, 마을 전체가 잠기는 대홍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었다. 그래서 그 책을 떠올리면 지금도 그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게 밀려온다고 한다.
 
작가는 더 깊은 기억도 꺼내 보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의 이야기다. 병원에서 간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읽고 있던 책이 <돌아갈 수 없는 집>이었다. 부모와 갈등이 있던 주인공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인데, 마지막 장에는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장면이 있었다. 책을 덮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다. 그 책을 볼 때마다 그 밤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고 작가는 말한다.
 
어떤 책이 특정 기억을 담고 있는지를 의식하며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참고서를 보면 학창 시절이 떠오르고, 대학 시절 읽던 책들을 꺼내면 그때의 캠퍼스가 눈앞에 펼쳐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대학 교재를 선뜻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경우, 중학교 때 친구에게 빌려 읽었던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생각하면 "꼭 읽어봐"라고 말하며 책을 건네던 그 친구의 얼굴과 표정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책은 이야기만 담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읽던 시간과 사람들까지 함께 담아두는 것이다.


책, 감정, 기억

이 책을 읽으면서 다지리 히사코로부터 수많은 책들을 그의 삶 이야기와 함께 소개받는 경험을 했다. 그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니, 필자가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과 그 시간들, 그 곁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책은 지식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간접 경험, 그리고 소중한 기억들을 켜켜이 쌓아준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독서모임에서 다뤘던 책들을 떠올리니, 그 자리를 함께했던 친구들과의 기억도 덩달아 밀려왔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고민 중이거나,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을 다시 돌아보고 싶거나, 인생의 어느 시련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은 독자라면 <책과 고양이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권한다. 책에 대해, 감정에 대해, 소중한 기억에 대해 차분히 되새기며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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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일상을 잇는 기록. 작은 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삶의 깊이를 나누는 온라인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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