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살았던 첫 세대 그리스도인

지난 read.log에서 소개한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는 한 비신자의 눈으로 1세기 교회를 바라본 로버트 뱅크스의 소설이었다. 독자는 그 비신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임과 예배, 그리고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에 소개할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는 같은 저자가 쓴 후속작이다.
전작에서 기독교 모임과 예배에 참석했던 비신자 푸블리우스는 이 책에서 회심한 그리스도인으로 등장한다. 작품은 그가 신자가 된 이후 보내는 하루를 따라가며,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 사회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는지, 그리고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복음은 가장 먼저 가정의 질서를 새롭게 한다

푸블리우스의 변화는 가정에서 먼저 드러난다. 그 시작은 아내와의 관계다. 로마 사회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동등하지 않았다. 특히 성적인 영역에서 이중 잣대가 뚜렷했다. 아내에게는 엄격한 정절을 요구하면서도, 남편은 상대가 다른 로마 시민의 아내만 아니라면 누구와 관계를 맺어도 문제 삼지 않는 것이 당시의 사회 분위기였다. 그러나 회심한 푸블리우스는 이러한 관행을 단호히 거부하고, 아내를 하나님의 형상을 함께 지닌 존귀한 동반자로 대한다. 이 변화는 가정생활의 모든 영역으로 이어진다.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성인 남성과 소년 사이의 성적 관계가 이른바 "멘토링"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었다. 남성 간의 사랑을 더 고상한 사랑으로 여기던 그리스 로마의 정서가 이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푸블리우스와 아내 유니아는 아들 누기오가 이러한 관계에 빠지지 않도록 지도한다. 사회가 옳다고 여기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다면 가정 안에서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딸의 교육에 대한 결정도 눈여겨볼 만하다. 당시 여자아이가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일은 드물었고, 회심 이전 푸블리우스의 가정에서도 아들 누기오만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부부는 딸 쿠미아도 같은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딸이 중매결혼에만 기대지 않고 더 넓은 가능성 속에서 자기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푸블리우스의 가정은 오늘의 그리스도인 가정에 묵직한 도전을 던진다. 우리는 남편과 아내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임을 고백하면서도(창세기 1:27), 정작 가정 안에서 그 고백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다. 자녀 교육도 다르지 않다. 자녀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스스로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기보다, 물질적 성공만을 좇게 하거나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처럼 여겨 그들의 인생을 부모의 뜻대로 결정하려 한다. 1세기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오늘 우리의 가정을 나란히 놓고, 무엇이 더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인지 정직하게 점검해야 한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과 더 가까워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복을 우선시하고 자신의 생명을 그들에게 내어주는 것이라는 관점은, 이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었다."
회심은 일상의 작은 습관까지 하나님께 돌려드린다

가정에서 시작된 변화는 일상 전체로 번져간다. 무엇보다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진다. 회심 전의 유니아는 당대 최고 디자이너의 옷을 즐겨 입고, 세련된 머리 모양과 온갖 장신구로 자신을 꾸미는 일을 즐겼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는 지나치게 화려한 머리 모양, 과시를 위한 사치스러운 장식, 극소수 상류층만 입을 수 있는 옷을 내려놓는다.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을 통해 그러한 겉치장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부는 아이들의 옷에 달려 있던 드림 장식도 떼어낸다. 이 장식은 아이를 악과 사고로부터 지켜준다고 믿던 로마의 부적이었다. 자녀를 지키시는 분은 부적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이 미신을 대신한 것이다.
식탁의 풍경도 달라진다. 이전에는 신전 앞에서 가정신에게 먼저 경배한 뒤 식사를 했다. 이제 그들은 지난밤의 단잠과 새로운 하루, 그리고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식사를 시작한다.
이처럼 푸블리우스의 가족은 회심 이후 이전과 분명히 다른 삶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어떠한가?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삶이 별로 다르지 않은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 자주 목격한다. 식사 전에 감사 기도조차 드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칼빈이 말했듯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는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드려지는 삶이며, 그 삶은 거창한 결단보다 식탁 앞의 짧은 기도 같은 작은 습관에서 먼저 드러난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떠나지 않고 세상 속에서 다르게 산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섞여 일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그러나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비그리스도인과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살았지만, 그들과 담을 쌓고 분리된 삶을 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가운데 머물며 변화된 삶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살아갔다.
당시 로마 사회는 노예를 업신여기고 재산으로 취급했으며, 심지어 성적으로 학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푸블리우스는 노예를 완전히 다르게 대한다. 그는 더 이상 그들을 노예가 아닌 가족으로 대우한다. 노예를 해방시켜 재정적으로 돕기도 하고, 자신의 회사에 직원으로 고용해 함께 일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푸블리우스를 완벽한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번은 그가 직원의 실수를 혹독한 말로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아내가 다가와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냐고 묻자, 푸블리우스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그 직원에게 정중히 사과하기로 결심한다. 이 장면은 개혁주의 신학이 가르치는 성화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회심한 성도도 이 땅에서는 여전히 넘어지고 실패한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 실패의 자리에서 우리를 회개로 이끄시고, 날마다 조금씩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신다. 성화는 한순간의 완성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점진적인 과정이다.
푸블리우스는 광장과 목욕탕도 자주 찾아 당시 사람들과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그릇된 관습은 거부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끌고자 애쓴다. 그리고 일상의 모든 순간을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으려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밖으로 물러나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 한가운데서 다른 모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서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시고 악에서 지켜 주시기를 구하셨으며,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셨다(요한복음 17:15, 18). 그럼에도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리고 교회 안으로만 숨어들려 할 때가 있다. 그러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안에서 일어난 변화가 어떻게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태도에도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 흥미롭다.”
푸블리우스의 하루는 오늘 우리의 하루를 묻는다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를 덮고 나면, 필자는 자연스럽게 지금 나의 삶과 1세기 그리스도인 푸블리우스의 삶을 견주어 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 쪽이 더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삶인지 묻게 된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모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그 안에서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세상 밖으로 도피하는 것도 그리고 세상과 똑같이 살아가는 것도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독자라면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가 자신의 신앙과 삶을 새롭게 점검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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