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적》, AI 시대에도 기독교는 여전히 유효한가를 묻는 변증서

우리는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 정보화 시대를 거쳐 이제는 AI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가치관의 변화도 함께 가져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기독교 신앙을 바라보는 자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변화는 기독교 밖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기독교 내부의 신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이러한 시대에 기독교의 본질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는 책이 있다. 바로 오늘 함께 살펴볼 C.S.Lewis의 《기적》이다.
기적을 제거한 '현대주의적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적이라는 것이 실제로 일어날 수 없다고 여긴다. 기적을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기독교의 영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세상의 논리에 순응하여 세속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기독교로 남고 싶은 이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기적의 요소를 기독교에서 제거하려 한다.
놀랍게도 이러한 흐름은 C.S.Lewis의 시대에도 동일하게 존재했다. 저자는 이렇게 기적을 제거한 기독교를 '현대주의적 기독교' 또는 '자연주의적 기독교'라 지칭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주의적 기독교'가 과연 옳은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답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적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기적을 제거하여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형태로 다듬는 것은 결국 기독교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지점이 분명해진다. 지금 사회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형태와 모습을 그대로 기독교에 이식하려는 태도이다. 세상에서 유행하고 다수가 따른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진리는 아니다. 보편적인 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하나의 거대한 기적 이야기에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창조물이기에 기적은 자연법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적을 인정하는 초자연주의와 기적을 부정하는 자연주의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그리고 과학적으로 기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현대의 논리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저자는 먼저 자연주의의 전제를 설명한다. 자연의 법칙이 절대적이기에 그 법칙을 위배하는 기적과 같은 사건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 자연주의의 핵심 주장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연이 그 자체로 하나의 피조물이며 창조된 고유한 성질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이 전제가 무너진다고 강조한다. 자연의 법칙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실 때에도 그 기적은 다시 자연 속에서 법칙을 따라 흘러가게 하신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자연의 창조주이시기에 자연법칙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기적은 결코 그 법칙을 위배하는 사건이 아니다. 《기적》은 성경 속 여러 기적을 예시로 들어 이 기적들이 사건 이후에도 자연법칙 안에 다시 수용되어 그 법칙을 따라 움직였음을 보여준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물과 포도, 그리고 시간의 창조주는 하나님이시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물과 포도와 시간이 주어지면 자연스럽게 포도주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그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물과 포도와 시간을 사용하여 즉시 포도주를 만드실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놓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독교인이면서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
저자는 또한 초자연주의를 부정하는 이들이 자신의 이성을 근거로 논증하면서도, 정작 이성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연법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전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성이 작동함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의 자연주의는 스스로의 논지를 부정하게 된다.
개연성을 근거로 기적을 거부하는 논리에 대해서도 저자는 같은 방식으로 반박한다. 관찰을 통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의 확률이 높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참이 되고, 역사상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이라고 해서 그것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개연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자연의 한결같음이라는 전제에 의존하고 있는데, 경험만으로는 그 한결같음 자체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결같음이 의문시되는 순간 이러한 방식의 개연성 논증은 힘을 잃는다.
필자는 《기적》을 읽으며 세상의 많은 논리가 이미 '기독교는 틀렸고 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은 뒤 그 결론에 맞춰 논증을 짜맞추고 있음을 확인했다. 자연주의자든 개연성을 근거로 기적을 거부하는 이든 과학적 논리로 기적을 거부하는 이든, 이들 모두 자신이 이성적이라 믿는 전제 위에 결론을 먼저 세워두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신자들조차 이러한 논리에 영향을 받아 기독교의 진리를 슬며시 내려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저자가 말하듯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면 우리는 기적으로부터 결코 안전할 수 없다.
"믿음과 불신의 근거는 2000년, 심지어 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기적은 지구 역사상 중심적 사건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기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저자는 이를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로 설명한다. 저자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 속에서 그 이야기를 전하고 계신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정작 그 주제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이 우주적 이야기의 중심 주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대부분은 이 이야기의 중심 주제가 원자, 시간과 공간, 경제와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중심 주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 우주적 이야기의 중심 주제가 바로 죽음과 부활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안목이 있는 이라면 이야기의 각 페이지에서 이 기적에 대한 암시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신 그 순간들은 지구 역사상 가장 중심적이고 중요한 시기였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가운데 기적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어가시는 구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임을 파악해야 한다. 이 구속사의 이야기가 현대인의 눈에는 신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자의 주장처럼 이를 부정하는 다른 이론들보다 '구속은 인간의 구속에서 시작해 마침내 우주의 구속으로 이어진다'는 이 교리가 훨씬 더 철학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결과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처음부터 의도하신 일이라는 사실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성육신이 정말로 일어난 일이라면, 이는 지구 역사상 중심적 사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변증서는 기독교인에게도 중요한 책이다
《기적》은 위에서 다룬 내용 외에도 인간의 죽음에 대한 이해,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이해 등 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저자의 논증을 담고 있다. 놀라운 점은 C.S.Lewis의 논증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설득력이 있으며 오히려 세련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는 C.S.Lewis가 기독교의 위대한 변증가이자 문학가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마지막으로 변증서라는 장르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대부분은 변증서를 기독교 외부의 주장에 맞서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쓰인 책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변증서는 오히려 기독교인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많은 신자들이 세상의 다양한 학문과 사상 앞에서 신앙이 흔들리고 위협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흔들리고 있는 지점이 무엇이고 세상의 주장이 왜 틀렸으며 우리가 믿는 것이 왜 옳은지를 깨닫게 해 주는 데 변증서만큼 좋은 수단은 없다.
이러한 이유로 평소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존재나 기적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던 적이 있는 사람, 그리고 과학이 발전한 시대에 기독교가 여전히 성립 가능한지 의심해 본 사람에게 《기적》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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