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초대교회 예배에서 발견하는 예배의 본질

기독교인들은 매주 주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예배를 드리지 않는 기독교인은 없다. 그런데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가 올바른 예배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경우는 적다. 너무나 습관적으로 주일이 되면 교회를 가고, 교회를 가면 생각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올바르게 생각하고 드리는 경우가 적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가장 좋은 것이 초대교회의 예배는 어떠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오늘 read.log에서는 이러한 초대교회의 예배를 알려주는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에 대해서 함께 확인해보고자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당시 사람들과 구별되었다

예배라고 하면 우리는 단순히 교회 예배당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좀 더 예배를 넓게 확인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예배다. 이러한 모습을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푸블리우스라는 사람이 친구인 글레멘드와 유오디아의 소개로 아굴라와 브리스가(브리스길라) 부부의 집에 방문하여 그들의 모임에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모임의 시작 부분에서 푸블리우스는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의 삶의 모습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모임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의 모습에서 그 당시 로마인들과는 다른 독특한 모습들을 발견하는 장면들이 다수 나온다. 대표적으로 도덕적으로 우수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 겉치레가 아닌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걱정하는 모습, 신분과 상관없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 등을 발견하면서 놀라는 모습이 언급된다. 이는 1세기 당시의 기독교인들이 당시의 비기독교인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전에 read.log에서 다루었던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에서도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은 당시의 일반적인 사람들과 비교해서 구별되는 모습이 나타났음을 언급하고 있다. 영아 유기, 신분 차별, 남성의 성적 자유 묵인 등 당시에 만연하던 사회와는 다르게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 자신의 자녀처럼 양육하고, 신분과 상관없이 같은 공동체 안에서 동등한 지체로 섬기며, 남녀 모두에게 동등한 정결과 순결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며 일반적인 사회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현재 기독교인들은 초대교회 성도들과 비교해서 일반적인 사회의 사람들과 확실히 구별되는 거룩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구별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우리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예배부터 점검하고 나아가야 함에 대해서 도전을 받게 된다.
“분명한 신분 차이가 있었는데도 아굴라 부부가 그들을 맞이할 때 차별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예식적이지도 신비적이지도 않았다

푸블리우스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으로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가 주최하는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당시의 일반적인 종교들이 그러하듯이 신비로운 느낌이 들거나 예식적인 형태의 모임이나 예배가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광신적인 모습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초대교회 성도들의 예배는 단순하고 실제적이었다.
심지어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에서 나오는 예배는 함께 식사를 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현재 기독교인들이 진행하고 있는 예배와는 다르게 매번 성찬식이 진행되었는데, 그 방식은 지금처럼 예식화된 형태가 아니라 실제 식사의 형태였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신 것과 같이,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며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예배 모습을 이 책을 통해서 살펴보고 있으면 현재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가 얼마나 예식화되었는지를 느끼게 된다. 심지어 마치 프로그램으로 짜인 형태로 바뀌어서 성도의 교제와 예수님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들이 약해졌음을 느끼게 된다. 중세 가톨릭이 예배를 미사로 바꾸면서 점차 복잡하고 신비로운 형태로 변질시켜 갔고, 이를 종교개혁가들이 개혁하고자 노력했지만 여전히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에는 예배의 본질이 빠진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에서 식사로 진행된 성찬식이 마무리되고 나서 함께 성경 말씀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책에서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다윗에 대해서 함께 나누는 장면과 사도 바울의 서신인 고린도서를 함께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말씀을 나누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부분을 찾고 서로 나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배 시간에 선포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설교자가 주장하는 세상적 지식이나 청자들이 좋아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예배의 설교 시간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는 우리의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그때까지 일어난 일들 가운데 종교적인 내용이라곤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예전의 틀은 고사하고, 어째서 사제조차 없단 말인가.”
초대교회는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였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또 다른 초대교회 예배의 특징은 바로 기도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발견하는 교회 공동체가 얼마나 기도에 힘썼는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사도행전의 모든 놀라운 역사에는 교회가 함께 모여서 기도에 힘썼다는 내용이 함께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이 책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굴라 부부의 집에서 진행한 예배 모임이 마무리되면서 모두 돌아가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각자 드리는 기도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함께 나눈 말씀과 자신의 실제 삶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놀라운 것은 기도의 어체가 무언가 어렵고 신비적인 표현이 아니라, 마치 지금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고 계신 것처럼 간단하고도 실제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도고의 기도다. 책에서 등장하는 마리아라는 할머니가 몸이 좋지 않은 상황에 있자, 예배를 이끌고 있던 가이오라는 사람이 모두 함께 마리아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이끄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마리아의 몸에 손을 올리고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치료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한다. 이 모습은 현재 교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기도가 이뤄져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그것은 바로 여러 종류의 기도도 필요하지만, 신앙의 공동체 안에 속한 많은 지체들을 위해서 도고의 기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에서 만날 수 있는 예배 속의 기도는 실제적이면서 간단한 기도였다. 그 내용은 실제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들에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신앙의 공동체 안에 속해 있는 지체들을 위한 도고의 기도였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서 교회는 기도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온전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이오는 할머니 옆에 서더니, 자기 손을 할머니 머리에 얹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를 위해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를 위해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구했다.”
이 책은 기독교인의 삶과 예배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떤 형태의 예배를 드렸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우리가 습관처럼 드리고 있는 예배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음의 종을 울려준다. 그리고 예배의 본질을 다시 한번 깨닫고, 우리가 어떠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인지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자신의 예배에 대해서 점검하고 싶은 기독교인에게는 정말로 유익한 책임이 틀림없다.
“세계를 보는 그의 시각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인 이유가 더 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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