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이 사람을 만들다: 츠빙글리 신학의 세 기둥

지난 root.log에서는 울리히 츠빙글리의 생애를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그 생애를 형성한 신학사상을 다루려 한다. 한 인물의 사상은 그가 살아낸 시대와 환경 속에서 빚어진다. 스콜라신학에 정통하고 인문주의의 훈련을 받은 츠빙글리는 교부들의 저작을 폭넓게 탐독했고, 그 가운데서도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받았다.
성경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확신 아래, 츠빙글리는 평생 성경을 연구한 인문주의자였다. 이는 그가 루터보다 이성의 역할에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는 용병제라는 스위스 사회의 병폐와 마주하며 사회개혁의 과제를 신학과 나란히 짊어졌다. 이러한 궤적은 그의 신학사상 전반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근원이다

츠빙글리 신학의 출발점은 성경론이다. 그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다. 인간은 죄인이며, 그 말이 아무리 뛰어난 가르침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할 수 없다. 교황의 선언이든 교부들의 가르침이든 마찬가지다. 이러한 확신 위에서 츠빙글리는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견지했다.
이 신념은 그의 사역에서 곧바로 드러났다. 취리히 그로스뮌스터교회에 부임한 츠빙글리는 교회력에 따라 정해진 본문만을 다루던 관행을 벗어나, 신약성경 첫 책인 마태복음부터 강해를 시작했다. 이후로도 그는 한 권의 성경을 택해 처음부터 끝까지 설교하는 방식을 이어갔다. 로마 가톨릭과 루터가 교회력에 맞춰 본문을 선택적으로 설교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었으며, 이 연속 강해 설교 방식은 오늘날까지 개혁교회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츠빙글리는 성경의 권위를 넘어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보았다. 성경이 명하는 것, 그리고 성경 안에서 분명히 허락된 것만이 신앙과 삶에 구속력을 가진다. 또한 그는 성령을 성경의 참된 해석자로 이해했다. 성령은 사제 한 사람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성도에게 역사하시기에, 사제가 성경 해석을 독점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같은 이유에서 그는 성경 원어인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배우는 일이 특정 계층이 아닌 모든 신자에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다

성경론 위에서 츠빙글리의 다른 신학사상들이 형성되었다. 그의 교회론은 성경이 보여주는 공동체적 삶을 중심에 둔다. 그리스도인 개인은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며, 지역교회 또한 온 세상에 흩어진 우주적 교회의 한 지체다. 츠빙글리는 교회를 믿음의 공동체로 규정하면서, 이 공동체를 표지하는 것은 외적 훈련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라는 단어에 세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첫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다. 모퉁잇돌 되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성령에 의해 하나로 모인 것이 곧 그리스도의 신부다. 둘째,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몸이다. 셋째, 교회는 특정한 지역 공동체를 가리킨다. 이러한 이해 위에서 츠빙글리는 교회를 "하나의 믿음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모든 사람들의 공동체"로 정의했다.
이 정의는 곧바로 교황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츠빙글리는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며, 스스로 교회의 머리처럼 행세하는 교황은 적그리스도라고 단언했다. 그에게 가시적 교회란 로마의 교황과 주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이었다. 교황은 결코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성찬은 은혜의 수단이 아니라 표지다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종교개혁자들을 갈라놓은 문제였다.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과도, 그리스도의 몸이 떡과 포도주 안에·함께·아래에 임재한다고 본 루터의 공재설과도 츠빙글리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합리적인 기념설, 곧 상징설의 입장을 취했다. 자유하신 성령은 성례를 사용하시지만 반드시 성례를 통해서만 역사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다. 성례란 '이미 받은 은혜의 표지'일 뿐, '은혜를 전달하는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핵심 논지였다.
츠빙글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를 구원하는 떡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였다. 떡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구원의 통로였다. 떡과 포도주 자체에는 영혼을 자유케 할 능력이 없으며, 따라서 성례 자체를 구원의 수단으로 삼을 수 없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을 육적으로 먹는 행위 자체가 믿음을 일으키고 죄를 사한다는 견해를 우상숭배의 극치로 보았다. 츠빙글리에게 성찬은 이미 확신을 가진 신자들이 함께 모여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예식이었다.
마무리하며
인문주의자이자 신학자, 그리고 개혁주의 전통의 아버지였던 츠빙글리는 카펠 전투에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사상을 더 성숙시키거나 개혁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시간은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후대에 귀중한 신앙의 유산을 남겼다. 그 유산의 이름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다. 츠빙글리는 성경을 신앙의 중심 자리에 세웠고, 성경을 경건의 샘으로 삼았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자기 구원의 확신을 향한 몸부림에서 시작되었다면,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은 그가 사랑한 조국, 스위스 백성의 구원을 향한 열망에서 출발했다. 이 차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변화시키는 영역이 교회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정치의 영역까지 포괄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은 훗날 아브라함 카이퍼가 정식화한 '영역주권' 사상을 앞서 보여주는 실례다. 그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며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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