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9번째 종교개혁기념일, 루터의 95개 논제 첫 문장을 다시 읽다
509년 전 오늘, 독일 비텐베르크의 한 수도사가 라틴어로 쓴 문서 한 묶음이 세상에 나왔다. 마르틴 루터의 《면죄부의 효력을 밝히기 위한 논제》, 흔히 95개 논제라고 부르는 문서다. 교회는 해마다 10월 31일을 종교개혁기념일로 지킨다. 같은 날 거리는 핼러윈 장식으로 채워지지만, 교회의 기억 속에서 이날은 복음이 다시 발견된 날이다. 필자는 올해 이날을 맞아 95개 논제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려 한다. 종교개혁이 무엇을 되찾으려 했는지, 그 열쇠가 첫 문장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첫 문장은 회개를 말한다

95개 논제의 제1논제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신자의 온 삶이 회개가 되기를 원하셨다." 루터가 붙든 말씀은 예수님의 공생애 첫 선포였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복음 4:17, 새번역)
당시 서방 교회가 쓰던 라틴어 성경은 이 구절을 '페니텐티암 아기테(paenitentiam agite)'로 옮겼다. 중세 교회는 이 말을 고해성사라는 제도와 연결해 읽었다. 회개는 사제 앞에서 치르는 의식이 되었고, 그 의식 뒤에 남은 형벌은 다른 방식으로 갚아야 할 빚이 되었다. 면죄부는 바로 그 빚을 덜어 주는 수단으로 팔렸다.
루터의 첫 논제는 이 구조 전체를 겨냥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개는 특정한 날 치르는 절차가 아니라 신자의 삶 전체에 걸친 방향 전환이다. 1516년 에라스뮈스가 펴낸 헬라어 신약성경도 이 말의 원뜻이 마음과 생각의 돌이킴, 곧 메타노이아임을 다시 드러내 주었다. 종교개혁은 성경의 한 단어를 원래 뜻대로 읽는 일에서 출발했다.
면죄부는 회개를 거래로 바꾸었다

1517년 독일 지역에서는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기금을 위한 면죄부가 대대적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도미니코회 수사 요한 테첼은 마인츠 대주교 알브레히트의 지원을 받아 이 면죄부를 설교했다. 비텐베르크의 교인들이 경계를 넘어가 면죄부를 사 오자, 남의 일이던 문제는 루터가 돌보던 양떼의 문제가 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돈 자체가 아니었다. 면죄부는 회개를 값을 치르면 끝나는 일회적 거래로 바꾸었다. 회개가 한 번의 결제로 끝난다면, 그 밖의 삶은 회개와 상관없는 일상이 된다. 루터는 제62논제에서 교회의 참된 보화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담은 거룩한 복음이라고 썼다. 교회가 나눠 줄 수 있는 것은 공로의 창고가 아니라 복음 하나라는 선언이다.
10월 31일의 장면은 역사 논쟁 속에 있다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채 교회 문에 망치로 논제를 못박는 장면은 종교개혁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오랫동안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었다. 게시에 관한 기록은 루터가 세상을 떠난 뒤 멜랑히톤의 진술에서 처음 나오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는 게시 자체를 의심하는 주장이 나왔고, 2000년대에는 루터의 조수 게오르크 뢰러의 메모가 확인되면서 게시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더해졌다.
분명한 사실도 있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마인츠 대주교에게 논제를 동봉한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는 지금도 남아 있다. 루터가 처음 택한 길은 반란이 아니라 학문적 토론과 교회 안의 정식 절차였다. 또한 95개 논제는 아직 이신칭의 교리를 온전히 담은 문서가 아니다. 루터가 로마서 1장 17절을 통해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깨다은 시점은 학자마다 다르게 본다. 종교개혁은 하루의 사건이 아니라 말씀을 더 깊이 읽어 간 여러 해의 과정이었다.
회개는 은혜를 받은 사람의 응답이다

루터 이후 개혁자들은 회개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칼빈은 《기독교 강요》 3권에서 회개를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의 참된 돌이킴으로 설명한다. 그는 이 회복이 한 순간이나 하루, 한 해에 완성되지 않고 신자가 평생 걸어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루터의 첫 논제가 칼빈에게서 신학적 체계를 얻은 셈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5장은 이 관계를 더 정확하게 정리한다. 회개는 죄에 대한 보상도, 용서의 원인도 아니다. 용서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주어진다. 그럼에도 회개 없이 용서를 기대할 수 있는 죄인은 없다. 면죄부가 회개를 용서를 사는 값으로 만들었다면, 종교개혁은 회개를 이미 용서받은 사람의 삶으로 돌려놓았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거래로서의 회개는 불안을 낳는다. 얼마나 더 치러야 충분한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응답으로서의 회개는 자유를 낳는다. 이미 치러진 값 위에서, 매일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말씀을 평신도의 손에 돌려주었다

회개가 평생의 길이라면, 그 길을 비추는 빛은 말씀이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에 머물던 시기에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옮기기 시작했고, 1522년 9월 출간된 이 번역은 '9월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읽혔다. 사제의 입을 통해서만 듣던 말씀이 농부와 장인의 식탁 위에 놓이기 시작했다.
필자는 요즘 에베소서를 한 글자씩 필사하며 이 유산을 자주 생각한다. 평범한 신자가 자기 언어로 된 성경을 펼치고 펜을 드는 일은 500년 전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열어 둔 문이다. 말씀을 읽는 평범한 아침이 곧 종교개혁의 열매다.
오늘의 종교개혁은 오늘의 회개에서 시작된다

개혁교회는 '개혁된 교회는 늘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을 오랫동안 되뇌어 왔다. 이 표현은 17세기 네덜란드 개혁교회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라는 기준과 함께 읽을 때 제 뜻이 드러난다. 늘 개혁한다는 말은 늘 새로움을 더한다는 뜻이 아니다. 늘 말씀 앞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종교개혁기념일은 과거의 영웅을 기리는 날에 머물 수 없다. 루터가 첫 문장에 쓴 대로, 신자의 온 삶은 회개의 삶이다. 509년 전의 문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으로 회개를 대신하고 있는가. 나의 일상 가운데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은 자리는 어디인가.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 종교개혁의 다섯 구호는 박물관의 표어가 아니라, 오늘 다시 하나님께 돌아서는 사람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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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log
신앙과 일상을 잇는 기록. 작은 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삶의 깊이를 나누는 온라인 매거진입니다.